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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누군가의 기억에 나를 심다/윤용인

by 신영석 2018.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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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시인의 시'하관'을 읽다가, ' 아, 정말 시인의 마음속 눈은

남다르구나'라고 감탄했습니다.

어머니를 묻지 않고 심다니요. 꽃을 심듯 심다니요.

죽음을 묻는다는 것은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단절의 의식입니다.

시신을 묻고, 유품을 묻고, 기억을 묻고, 이승의 인연을 묻습니다.

그리고 잊습니다. 죽은 자는 죽은 자, 산 자는 산자라는 나눔을

통해 산 자는 자신의 잊음을 정당화합니다.

주변 사람들도 슬픔에 머물지 말고 어서 툴툴 털고 일어나

열심히 살아가라고 격려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다르게 말합니다.

어머니를 심습니다. 그리움을 심습니다. 추억을 심고 기억을 심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심습니다. 그렇게 심은 어머니는 봄이 오면

앞산의 꽃으로 피어나고, 여름이 오면 뒷산의 나무로 자라나고

가을이 오면 빨간 단풍으로 물들다가, 겨울이 오면 수북한 함박눈으로

내릴 것입니다. 살아서 어머니는 자식에게 생명을 주고, 죽어서

어머니는 자식에게 심어져 영원한 삶을 받습니다.

오래전 어머니를 잃은 모든 자식에게, 언젠가는 어머니를 잃을

모든 자식에게, 또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부모님에게 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 언어인가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

시인이 진정 바라는 것은, 어머니의 윤회가 아닙니다.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가나 자신의 어머니로 태어나달라는 힌두이즘적

소망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살아생전 우리 어머니, 좋은 음식 하나 편히

드시지 못하고 고운 옷 하나 제대로 입어보지 못한 인고의 날들을

자식은 너무나 잘 알기에 다시 또 사람으로, 그 무엇으로도 태어나지

말라고 간구합니다. 오히려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열반, 윤회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꽃으로조차 피어나지 말고 영면하시라고

어머니를 심으며 곡진하게 기도합니다. 피어나는 것은 자식의 기억속에서일뿐

어머니는 이 고통의 바다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편안한 슬픔과 안온한

그리움이 이 시에서 잔향처럼 오래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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