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9 산행일기

겨울의 지리산을 찾아서...

by 신영석 2019. 1. 20.
728x90

산중턱에 자리한 고향후배의 누이집에서

첫날밤을 묵었다.

새벽 심한 갈증에 잠이깨어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별천지가 보였다.

2012년에 처음 쏟아지는 하늘의 별을

따겠노라고 처음으로 대청봉을 찾았드랬다.

예약했던 중청대피소는 태풍으로

물거품이 되었고 물론 하늘의 별도

따지 못했었다.

그후에도 두어번의 대청봉과 덕유산에서

밤을 맞이했었지만 오늘같은 은하수는

처음이었다.

허접한 폰카메라로 담아내지는 못햇지만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고향후배가 백무동까지 태워줘서 조금은

수월하게 겨울의 지리산을 찾는다.

오늘 산행은 홀로 백무동~장터목대피소~

천왕봉구간을 왕복한다.

겨울에 찾았던 지리산 인근의 산들에서

하얀 꼬깔모자를 쓰고 있는 천왕봉을

잊혀지지 않는 첫사랑처럼 그리워하고

연모했던 그 천왕봉을 오늘 만나러 간다.

기대했던 하이얀 설원의 지리는 못만났지만

가슴벅찬 이런 선물을 내게 안겨주었다.


장터목대피소까지 약3시간의 산행중

젊은부부와 초등학생의 한가족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묵묵히 수행하듯이 주기적으로 보여지는

이정표만 확인하며 길을 걷는다.

참샘

물맛이 좋아 오르며 내리며 갈증을 해소했다.

젊은부부와 함께 따라나선 13살의

초딩에게 사진 한장을 부탁했다.

어젯밤 고향후배와의 넉넉한? 회포 탓이었는지

내마음을 읽고 있었다.

이 사진을 몇몇 여인에게 보냈더니

"업고

간다고

전하라"라는 답에

혼자 정신나간 사람처럼

박장대소를 해야만 했다.

어느 산객이 소지봉이라고 써놓았다.

어쩔수 없이 셀카봉을 쓰지만

조금은 거시기한 내모습이다. 





눈위에 쓰는 시/류시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고 하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조망처에서 바라다 본 지리 주능선

사진 중앙으로 반야봉과 노고단이 보인다.

하얀 설원의 지리산은 내어주지 않았지만

가슴이 울컥해질만큼 이런 멋드러진

선물을 산행내내 넉넉히 내어주고

있었다.

혼자 걷는 산행이기에 급할것도 없는만큼

가슴에 그리고 눈에 담아두었다.

연하봉 방향일게다.

장터목대피소

평일이긴 했지만 산객이라곤 나혼자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다.

제석봉의 고사목과 산그리메


누군가는 저마다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는데

내겐 불가능한 일이다.


너의 모습/이정하


산이 가까와 질수록 산을 모르겠다

네가 가까와 질수록 너를 모르겠다


멀리 있어야 산의 모습이 또렷하고

떠나고 나서야 네 모습이 또렷하니


어쩌란 말이냐

이미 지나쳐 온 길인데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인데


벗은 줄 알았더니

지금까지 끌고 온 줄이야

산 그늘이 깊듯 네가 남긴 그늘도 깊다




심남아!

지리의 겨울은 첨이지?

저앞의 천왕봉이 어서오시라 손짓한다.

산행 다음날 남덕유산에서 만난

팡팡님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질했더니

여기가 어디고 조기가 어디고....





통천문(通天門)



혼자 갇는길에 외롭지 않으라고 어느 산객이

눈사람을 세워 반겨주고 있었다.


이 사진을 누가 겨울의 지리라고 인정해줄까?

하얀 설원도 뺨을 때리는 찬바람도 없으니

봄날이라해도 어거지 부릴 수 없는 형편이다.

누가 믿지 않아도 지리만큼은 인정해줄게다.

몇해전 아니 오래전부터 당신을 그리워하고

연모해왔던 심남이가 찾아 왔노라고...



정상에는 대여섯명의 산객들이 오붓하게

봄날같은 겨울의 지리와 함께하고 있었다.

장난기로 천왕봉에게 왕봉아!

내년에 다시 찾아올께 했더니

옆에 계신 여성 산우님께서

그러시면 아니되옵니다!

왕봉이가 서운해 할터이니 사시사철

찾아 오시라해서 또 한번 웃었다.

네가 그리울때 다시 찾아올께

말없는 약속을 하고 돌아선다.


왕봉이가 외로울듯 싶어

이쁜 천사는? 남겨놓고 왔다.

겨울과 봄을 드나들었다.

제석봉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산그리메에

또 한참을 서성거렸다.

첫사랑 그녀를 바라보는 애틋한 눈길로...



제석봉의 고사목과 파아란 하늘이 참 예쁘다.


기대했던 하얀 설원(雪原)의 지리는 만나지

못했어도 눈이 시릴만큼의 아름다운

산그리메를 만나 가슴에 가득 채웠으니

행복한 마음으로 하산길을 서두른다.



겨울의 지리에게 전하는 고백(告白)


고백/용혜원


그대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때


나의 삶이

나의 모든 말이

사랑의 고백이 됩니다


내가 그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때


나의 모든 것들이

나의 목숨까지

절실한 고백이 됩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