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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남자(男子)는 일생(一生)에 세번만 울어야 한다는데...

by 신영석 2020.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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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선인(先人)들의 이야기 이긴 하지만

남자는 일생의 세번을 운다고 들었다.

첫번째 울음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던 첫 생일!

"온동네 떠나갈듯 울어 젖히는 소리

바로 오늘이란다"

그리고 두번째는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라고 들었고

마지막 한번은 기억하지도 못하겠다.

문득 돌이켜 보니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44년이 되어간다.

우리 나이 열일곱살의 겨울에 오랜 지병을 앓고 계시다

돌아가셨다. 지금처럼 장례식장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허름한 시골집에서 치뤄지는 삼일간의 장례에 맏상주로

이틀밤 밤새 지폈던 아궁이 불에 발바닥이 물집이

생기는줄도 모르고 잇으면서도 한방울도 나오지 않는

눈물과 곡(哭)에 지켜보던 동네 어르신들의 "독하네"라는

쓴소리를 들어야 했던 기억이다.

삼십여년의 공직생활중 세번쯤 퇴직의 기로에 선 적이 있었다.

아마도 두번째의 기로에서 소주 대여섯병을 사들고 찾아간

묘앞에서 원망의 눈물을 흘린듯 싶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서야 공원묘지 아버님의 묘를 개장하고

한줌의 재를 배낭가방에 넣은채 고성산에 올라 소주 한잔을

따르고 그때서야 "처음으로 아버지를 업어드렸다"라는

어쩌면 마지막 인사에 눈물을 흘린듯 싶다.

그리고 29년전 불의의 사고로 떠난 그리고 그 전에 몇년을

갈등으로 점화되었던 동생의 죽음앞에 눈물을 보였다.

그뒤 이십 몇년을 함께한 집사람의 이별에도 이유없이

눈물을 보이지 않았더랬다.

그리고 내나이 이순(耳順)이 되었다.

물론 이순이 되기전 전 어느 순간부터 눈물이 잦아졌다.

잘 보지도 않는  다큐 드라마에서 가족(家族),형제(兄弟)

부부(夫婦)의 작은 사랑에 눈물을 보여야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TV를 켜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이제 내가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자식(子息)이고

또 한 자식의 부모(父母)가 되어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십몇년의 세월을

겉도는 자식(子息)앞에 몸도 마음도 약해진 모양이다.

분노(憤怒)와 연민(戀憫)의 사이에서 혼동을 한다.

잊어야 겠노라고 아니 잊혀져야 한다고 다짐을 하지만

혼자 펼쳐논 저녁상 앞에서 소주라도 한잔 들어가면

상심을 하게되고 눈물은 보이지 않아도 슬퍼진다.

어쩔수 없이 뱉어버린 독한 소리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녀석의 마지막 항변처럼 어쩔수 없는 내 피붙이고 자식인게다.

몇달간 전화 한통없이 오로지 톡(talk)으로 전해진 황당한 요구가

이제 두달 가까이 끊어졌다.

제발 이젠 그냥 자격없는 애비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여

아주 평범한 인생을 살아주었음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이제 보일만큼 보인 눈물을 거두고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자식(子息)이 되어주면 안될까?

느즈막히 자손(子孫)의 효도는 받지 못하지만 혼자 번민하는

자식보다 좋은 분과 함께 지내시는 어머님께도 오늘 밤은

웬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취할때 까지 마셔야 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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